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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더호프와 브루더호프 사람들의 블로그

공동체 실험이 성공했을까?

2018-06-14

A Christian Peace Experiment book cover

1937 6, 영어권에서 가장 오래된 영국 잡지인 스펙테이터는 기독인의 실험, 그리고 운명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독일 나치로부터 추방된 브루더호프가 영국의 보금자리를 재건했던 지난 일년을 반추한 것이었다.

이 기사는 독일에서 핍박이 뚜렷해지기 이전부터 브루더호프가 지녔던 비전과 활동을 그렸다. “유럽에서 가장 자신들의 메시지가 전달될 수 있는 곳은 영국이라 여긴 듯 싶다. 자신들의 삶의 정신이 완전히 표현될 수 곳에 브루더호프를 세우기를 원했다.”    

이제 팔십 이상이 흘러 당시를 회상할 있는 책이 출판되었다. 교회 역사학자인 이안 랜달 교수는 기독인의 평화 실험A Christian Peace Experiment에서 코츠월드 브루더호프에 대해 상세히 기술했다.

책은 나치 정권으로부터 평화로운 삶의 증거가 짓밟힌 피난민 그룹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영이 놀랍게 흘러 넘쳤는지에 대해 생생히 서술하고 있다. 극도의 가난, 어려움과 전쟁의 기운이 팽팽한 가운데 1936년부터 1941년까지 수많은 젊은 영국 청년들이 공동체에 합류했다. 이들은 유럽 전체가 피바다로 잠길 평화에 헌신하고자 마음먹었고, 동료들이 프랑스 전선에서 겪을 만한 고난을 각오했다. 랜달 교수는 브루더호프에 동참한 개인이 경험한 핍박과 갈등, 불안정한 상황에서도 활발히 번성했던 공동체의 극복 경험담을 엮어냈다.

Men working on the Cotswold Bruderhof

코츠월드 브루더호프 멤버들이 벽돌을 만드는 장면, 1936

그러나 공동체가 코츠월드에 제대로 정착하기도 전에 핍박이 닥쳐왔다. 지역주민들은 자신들의 문턱에 독일 스위스 영국 사람들이 모여 살며 농장을 일구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빗발치는 청원이 영국 하원에까지 미쳤고, 지역 미디어를 통해 반대 운동이 시작되었다. 브루더호프는 독일 스파이들의 아지트라느니(이해는 간다!) 공동체 안의 연못에서 잠수함을 만들고 있다는(설마!) 기가 막힌 소문들이 돌기 시작했다. 모든 장벽에도 불구하고, 공동체는 가능한 자원을 능가하는 열정으로 독일에서 못다한 선교활동을 지속하려 했다.   

그러나 오래 가지는 못했다. 1941 영국 정부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독일 국적인들에게 특정 지역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억류했다. 문제에 대해 공동체 일원들은 함께 끝까지 하기로 결심하고 다시 한번 피난민이 되어 남미에 있는 파라과이 옮겨 갔다. 이렇게 코츠월드의 평화 실험은 멈춰지게 되었다.

그래서 실험의 결과는? 글쎄, 아직까지는 지켜봐야 같다. 실험은 아직까지 세계 브루더호프가 존재하는 곳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책을 읽으시라. 그러나 실험에 동참하길 원한다면 당신의 능력과 삶을 기부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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