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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아이, 나쁜 아이?

공동체에서 아이 키우기 제 8편

2018-10-22

making track
달리기 트랙을 만드는 고등학생들

지니는 에버하르트의 공동체 교육 소책자를 번역하며 양육 체험을 연재로 쓰고 있다.

어제 드디어 ‘녀석’을 보내버렸다. 지난 3 개월 간에 긴 여름 방학을 마치고 10학년이 되어 비치그로브 공동체가 운영하는 학교에 다니다가 주말에나 온다. 9학년 때 같이 살던 가족과 다시 살게 되었다고 좋아하면서 차에 오른다. 여학생들이 있어서 그랬는지 제 부모를 껴안는 폼이 무척 어른스럽다. 아침에 화장실 청소 안하고 도망간 ‘녀석’의 행보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예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이해가 되는 가지 비유가 있다. 아들(마태복음 21:28-32) 비유가 중에 하나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시켰더니 그러겠다고 하고서는 가질 않고, 싫다고 둘째 아들은 뉘우치고 가서 일했다는 비유 말이다. 자식을 낳기 전에는 비유야말로 정말 복음의 진수라느니 낡은 효의 관념을 깨는 혁명적인 말씀이라고 감격했다. 그런데 자식 넷을 키우면서는 , 예수님은 자식이 없어서 이런 말씀을 하셨나 하는 서운한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우는 소리를 하느냐? 우리 집의 녀석이 아니오!” 하면서 둘째 아들 행세를 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우리와 주방을 나눠 쓰는 70 아주머니께서(본인은 할머니라고 하면 질색을 하신다!) 우리 녀석에게 심부름을 시키셨는데 아니 면전에 대고 싫어요!” 하는 것이 아닌가. 정말 기가 막혀서 아이고 죄송하다느니 수선을 떨며 녀석 뒷덜미를 잡고 자리를 빠져 나왔다. 기회는 이때라고, 삼강오륜을 한참 떠들려고 입을 여는데 놈이 미꾸라지처럼 쓰윽 도망을 버렸다. 나는 화가 나서 졸고 있는 남편을 깨워 자식 교육을 어떻게 시킨 거냐, 하는 짓이 당신 닮았다 어쩌고 화풀이를 대었다. 그렇게 씩씩거리며 주방으로 돌아왔는데 어느새 녀석 아주머니와 환담을 나누며 심부름거리를 챙겨서 룰루랄라 나간다. 나와 눈이 마주친 녀석 자식을 지긋하게 믿으면 어디가 덧나십니까? 하는 눈초리다. 허둥지둥 잠에 남편은 아니, 자식 어디 갔어. !” 하며 화난 척을 해댄다. 나는 평생 짝을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며 한마디 건넨다. “게임 ! 오늘도 녀석 승리!”

우리가 사는 공동체 마을은 어린 아이부터 노인까지 끊임없이 무언가를 한다. 마을 구석구석을 나누어 쓰며, 함께 먹고 사는데 몸이 성한 이상 움직이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아이들도 5학년 이상이 되면 공동체에서 의젓하게 자리를 맡아 책임을 맡는데, 우리 녀석  9학년이 끝날 때가 되어서야 사람이 한번 되어볼까 기지개를 피기 시작했다. 수업시간에도 낄낄거리며 쪽지에 우스개 소리나 적어서 친구들에게 종이비행기를 날리다 걸리면 시치미를 딱 떼거나, 우리 가족의 정원이나 텃밭을 가꾸려고 부를 찰나에는 홍길동처럼 사라지는 기묘한 재주를 부려 우리 부부의 목청은 판소리꾼 저리 가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그런데 녀석 지난 한달 동안 이상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여름 방학이 시작되면서 녀석 우리 공동체 먹거리를 관리하는 곳에서 일을 했는데, 이곳은 돈을 주고 받지 않아서 그렇지 여느 슈퍼마켓처럼 아주 분주한 곳이다. 이곳을 새로 맡은 부부를 돕기로 했는데 전만해도 녀석 근무 태도가 시원찮았다. 내가 봐도 녀석 세월아 네월아 농땡이를 치며 지나가는 사람들과 덕담이나 주고 받더니, 글쎄 사이 땀이 송글송글 맺도록 일한다며 책임자의 칭찬이 자자하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래? 우리 부부는 녀석 변화가 두렵기까지 했다. 녀석 외에도 다른 도우미가 있었는데 성실했던 청년이 다른 공동체로 이사를 가고 나자 갑자기 녀석 머리에 비상벨이 울리기 시작했던 모양이다. 이제는 틈만 나면 먹거리 창고의 청소 상태를 확인한다. 밀가루 통이 비었다, 음식물 쓰레기가 넘쳐 난다, 요즘 물가가 장난이 아니라며 걱정을 해댄다. 옆집에 사는 친구 녀석은 공동체 밭일을 맡았는데 공동체가 수확한 채소의 양과 저장 상황을 낱낱이 파악하며 내년 먹거리 판도를 그려낸다.

 “요즘 애들은(그리고 어른들은^^) 감사할 줄을 몰라요! 공동체에서 준비한 먹거리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며 밥상 앞에서 한숨을 쉬는 녀석 앞에 마른 침만 꿀꺽 삼킨다. 그러더니 오늘은 학교로 떠나기 직전까지 기름통 쌓아 놓은 데를 구석구석 노란 장갑 끼고 제대로 청소를 한다. 그냥 입만 벌리고 있는 우리 부부. 아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래유?    

아이고, 이제 녀석 없이 평안히 천진난만한 딸과 소꿉장난이나 해야지, 한숨을 푹욱 쉬려는 찰나, 어허 지난  3개월 런던시티미션에서 인턴 노릇을 하던 녀석 대학입학을 앞두고 집으로 돌아온다는 연락이 왔다. 런던 맛을 녀석 말이 많다. 넓은 세상을 보고 도시 앞에 시골 쥐의 심정이 되어 오늘도 하늘을 우러러 본다. 부모의 길은 정녕 이렇게 길고도 험하단 말입니까?’

에버하르트 할아버지 글을 읽으며 오늘도 부모의 길을 뚜벅 걸어간다!


감사함

너무 착한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편치 않다. 아이들의 착한 행동이라는 것이 자연스럽기 보다는 어째 강요 받은 것처럼 보이고, 겉만 번듯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어린아이답지 않게 불손한 행동을 나대는 아이들이 잘했다는 것이 아니다. 주제넘게 자기를 앞세우며 소란을 피우며 버릇없는 짓을 해대고, 다툼을 일삼는 아이들을 보면 어린아이라고 악에서 면죄를 받을 수는 없는 것인가 싶어 한탄스럽다. 중에서도 감사할 모르는 아이들을 어리석다는 생각을 금할 길이 없다. 아이에게 보여준 선의의 애정과 희생을 으레 당연히 상습적으로 받는 것으로 여기는 생각 없음 때문이다. 이렇게 애지중지 감싸면서 키운 아이들이 나중에 교회 공동체에서 형제나 자매로 성장할 어려움을 겪을 것임은 너무나 자명하다.   

 

자기 훈련

가정과 교육기관에서는 자기 기분에 아이들이 너무 좌지우지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 아이들이 감정을 추슬러 자신이 일에 대해 책임지고, 짧은 마디라도 자신의 심정을 표현할 있도록 배워야 한다. 누군가 자신을 날카롭게 지적했을 , 아이가 마치 억울한 일을 당한 듯이 반응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아이들이 잘못된 결정이라 할지라도 승복하는 태도를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묻는 말에 대답을 얼버무리기 보다는 자신의 입장을 명확하게 밝힐 있도록 크게 격려해야 한다.  

-에버하르트 아놀드의 <공동체에서 아이들 교육> (한국어 미발간)에서

오지니의 공동체에서 아이 키우기 시리즈를 더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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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니

오지니는 영국 다벨 공동체에서 살면서 용서하고 사랑하며 가족, 이웃들과 하나님 나라로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보이스 블로그의 한국어 변역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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