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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 생존자 우리 엄마의 비엔나

2018-11-15

엄마이자 할머니요, 증조모이기도 로테 카이덜링은 홀로코스트 생존자이다. 내가 로테를 처음 만났을 , 그녀는 환갑을 반쯤 넘은 상태였다. 얼마나 귀한 만남인지. 웃음을 계속 터뜨리던, 섬세하고 자상한 그녀는 엄마처럼 푸근하여 지금까지 나를 딸처럼 대해 주신다.   

이번 달에 로테는 대단한 여행을 하고 있다. 여행은 자신뿐 아니라 식구들의 삶에 파장을 일으킬 것이다. 로테의 중에 호주 브리스베인에 살고 있는 아네마리가 여행이 자신과 엄마와 가족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써서 내게 보내 주었다. 아름답고 깊은 글에 감사를 표한다.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우리 부모님 침대 옆 탁자 위에 늘 놓여 있던 기념품처럼 보이는 술잔이 기억난다. 금테가 둘러진 작은 유리잔이었는데 “Wien”라는 신비로운 단어와 페리스 회전 바퀴 관람차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나는 유리잔이 너무 신기해 조심스레 만져보곤 했다. 그런데 내 앞에서 누구도 그 유리잔으로 뭘 마시는 걸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 그저 탁자 위에 놓여만 있던 유리잔. 그런데 그 장식품이었던 유리잔이 나를 과거와 어떻게 연결하는지 이제야 뭔가 감이 잡히는 듯하다. 이 유산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이렇게 오래 걸렸다.    

우리 엄마, 샬로테 베르거 카이덜링은 나치 유대 학살의 생존자이다. 엄마는 현재 89세로 뉴욕 북부에 살고 있다. 히틀러와 그의 3 제국은 엄마의 부모님과 친척들, 교육의 기회와 오스트리아 시민권, 그리고 그녀의 조국을 앗아갔다.

나는 자라면서 엄마가 부모님과 보낸 그 귀한 칠 년의 얼마 안되는 단편적인 기억들을 반복해서 듣고 또 들어야 했다.

드디어 비엔나의 상징인 대관람차를 보면서 이것이 우리 엄마와 그녀의 빼앗긴 어린 시절을 상징해왔음을 깨달았다.

엄마는 비엔나를 마치 마법의 나라라도 되는 것처럼 말했다. 유명한 가로수 길과 세계 정상급의 음악가들, 스트라우스, 왈츠, 맛있는 토르테 케이크 그리고 비엔나 아이라면 누구나 보기를 간절히 원했던 신비한 페리스 회전바퀴 대관람차를 생생하게 묘사하곤 했다.

엄마의 어린시절 전체는 몇가지 안되는 짧은 년의 기억 속에 결집되어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 독일의 성능 좋은 열차를 이용해 유럽을 탐방하면서 예상치 못하게, 내가 지금 달리고 있는 철도 길로 나의 외조부모님과 백만의 사람들이 통제된 죽음을 맞기 위해 기차에 몸을 실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용감하게도 자신의 유일한 딸을 킨더트랜스포트(2 세계 대전 당시 보호자가 없는 17 이하 유대인 어린이들의 영국 입양을 허가한 정책) 열차에 태우며 영국에 가서 소들과 풀들과 꽃들도 구경하고 있으면 엄마 아빠가 찾으러 거라고 약속했으나 그것은 마지막 작별 인사가 되고 말았다.

four Jewish children taken in at the Bruderhof after escaping Germany via the Kindertransport train
1939년 킨더트랜스포트를 타고 온 다른 어린이들과 코츠월드 브루더호프에서, 로테(왼쪽에서 두 번째)

유럽을 여행하며 돌아본 활기찬 도시들 중에, 엄마 말대로 과연 비엔나는 보석이라 있었다. 드디어 비엔나를 상징하는 리젠라드(거인 바퀴라는 ) 대관람차 앞에 섰다. 이것이 우리 엄마와 그녀의 빼앗긴 어린 시절을 상징한다 싶으니 가슴이 뭉클했다

일곱 엄마가 히틀러가 발코니에서 발악의 그의 추종자들이 하일 히틀러라고 화답하는 목도하기 전에, 그녀가 길거리에서 남자 아이들에게 유대인! 유대인이다!”라고 불리며 쫓겨 다니기 전에, 그녀의 부모님이 운영하던 제과점이 나치에 의해 몰수당하기 전에, 나의 외할머니 발레리가 악명높은 리츠만슈타트 유대인 거주지에서 죽임을 당하기 전에, 외할버지 요제프가 베르겐-벨젠 강제 수용소에 갇히기 전에, 유대인들이 비엔나의 공원이나 공공 유원지에 입장 거부를 당하기 전에, 모든 지옥의 문이 열리기 전에, 아빠와 그의 유일한 딸은 주일 오후가 되면 손에 손을 잡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페리스 대관람차가 돌고 있는 유원지 안을 거닐 했다. 어렸던 우리 엄마는 자신의 아빠에게 대관람차를 태워달라고 조르곤 했던 거지.

Ferris wheel in Vienna, Austria
페리스 대관람차의 현재와 1936년 당시. © Jorge Royan / http://www.royan.com.ar / CC BY-SA 3.0 and FOTO:FORTEPAN / Lissák Tivadar

아빠, 태워줘요? ?” 그러나 답은 같았다. “로테야, 네가 나이가 들면 그때 태워줄게아직은 되요.”

아직은 안된다 80년이 흘렀다.

지금 엄마는 비엔나에 있다. 그녀가 너무나 사랑했던 아빠가 가르쳐 유일한 노래는 나의 사랑하는 조국이여, 안녕.”이다. 마침내 노래가사가 역전되었다. 엄마는 마침내 집에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물론 엄마는 페리스 대관람차를 것이다. “사람들이 그러는데, 꼭대기로 올라가면 헝가리까지 보인다는 구나.” 엄마는 내게 항상 이렇게 말씀하셨다.

엄마가 그토록 사랑하는 비엔나의 거리를 걸으며, 생크림이 가득한 커피를 마시며,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운영하던 제과점과 자신의 집 밖을 둘러 보면서 자신이 조국에 왔음을 실감하겠지. 혹시 87세된 노인네가 대관람차를 타면 우스꽝스럽게 보일까 싶어 걱정을 하지는 않을까. 제발 엄마가 다시 어린아이처럼 되어 그 관람차를 타고 꼭대기까지 올라가 당신이 그리 사랑했지만 당신을 배반한 도시를 내려다보며 원으로 완결된 평화를 맛보게 되길 간절히 기도한다.

그리고 우리 엄마에게, 엄마가 그토록 사랑하던 조국을 찾아가는 모험 길에 부디 기억하실 있어요. 지금까지 일러주셨던 엄마의 모든 기억들이 어느 때보다 제게 생생하게 다가오고 있다는 아시길 바래요. 제가 오스트리아의 발을 딛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사랑에 빠진 엄마 덕분인 걸요. 엄마가 제일 좋아하시던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당신의 눈을 항상 반짝거리게 했지요. 이제 마리아 트랩처럼, 엄마도 산마루에 서서 엄마 자신의 노래가, 엄마 인생의 가락이, 그리고 엄마가 그렇게 그리워했던 부모님에 대한 사랑이 울려 퍼지는 들어 보세요.     

그리고 엄마 한가지 아셔야 것이 있어요. 제가 비록 지 반대편 신대륙 남반구에 살고 있고, 엄마가 지금 서있는 구대륙 푸른 다뉴브 강의 비엔나와는 완전히 다른 강변 도시에 살고 있다 해도, 사우스 뱅크를 지나 브리스베인의 대관람차를 지날 때마다 엄마 생각을 없답니다. 우리 사랑하는 엄마, 이제 80년된 질문이 응답될 차례가 왔어요. “아빠, 언제 페리스 대관람차 태워줄 거예요?” 할아버지의 안에 잡힌 엄마의 손이 느껴지세요 댓글

About the author

Norann Voll

노랜 볼

노랜 볼은 2002년 호주 뉴 사우스 웨일즈 지방에 있는 단쏘니아 브루더호프 공동체에 이주하기 전까지 미국 뉴욕 허드슨 계곡 근처에서 살았다. 남편 크리스와 함께 세 명의 아들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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