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따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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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따르기

공동체가 태어나다

2017-10-31

Emmy Arnold
에미 아놀드

올해 브루더호프는 97 창립된 때를 기념한다. 독일은 1 세계대전에서 패전을 했고, 사람들은 우울했으며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전투에서 젊은이들이, 밤새 이어지는 전쟁 속에서 가난과 질병으로 여자와 아이와 노인들이 죽어갔다. 다음 글은 브루더호프의 창립자인 에버하르트 아놀드의 아내 에미가 어떻게 하나님이  혼란과 위기 가운데서 새롭게 성령강림절을 체험케 하셨는지 묘사하고 있다. -편집자


1차 세계 대전의 끝 무렵부터 전쟁 전에 우리를 그토록 사로잡았던 공동체 운동은 서서히 쇠진되기 시작했다. 종교적인 말들은 난무했으나 영혼을 장악하는 힘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열심과 열정은 사라졌다. 전쟁의 경험은 우리의 모든 가능성을 앗아간 듯 했다.

에버하르트는 베를린의 군용 병원 등지에서 사목활동을 했다. 그는 자주 심하게 낙담해서 귀가하곤 했다. 그리고 최전선에서 싸웠던 군인들의 끔찍한 경험을 되뇌었다. 죽음 앞에서 군인들의 양심은 살상과 강탈 행위에 가담했던 일들로 일그러졌다. 우리 안에서 이 질문은 점차 분명한 길을 찾기 시작했다.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 칭하면서 군인이 된다는 것은 가능한가?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1914년에 하나님은 어디에 계셨는가?”라는 질문은 지속적으로 우리 주변을 맴돌았다. 목사들은 전쟁에 대해 설교하면서 무기를 축복하며 독일의 승리를 위해 기도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의 기도를 들으셔야 할까? 독일? 영국? 프랑스? 죽음의 분위기는 독일 전역에 걸쳐 느껴졌다.  

그러한 때의 삶은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 돌파되었다. 사람들은 삶의 근원을 찾아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마치 봄기운을 맞은 듯이 죽음에서 부활한 것 같았다. 이런 운동이 많은 무리 가운데서 일어났다. 인간의 운명에 대한 새로운 통찰과 삶의 목적에 대해 질문하였다. 사람들은 인간이 되기를 원했다. 그저 한 인간으로서 형제요 자매로 살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찾기 위해 자연 속으로 나아갔다. 그들은 숲과 들판과 초원으로 배낭을 매고 단순한 옷차림으로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소년들은 주로 샌들을 신고, 짧은 바지와 러시안식 셔츠에 허리에 줄을 매달았다. 소녀들은 거친 면으로 만든 단순하지만 밝은 색 드레스를 입었다. 많은 사람들이 기타와 바이올린을 메고 다니는 건 드문 일이 아니었다.

그 무렵, 에버하르트와 나는 베를린의 우리 집을 개방하고 사람들을 초대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관심 있는 이들이 매주 모였다. 전직 공직자들, 군인들, 노동계급의 남녀들, 청년, 노인,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경건주의자들까지 다양했다. 우리는 많은 이상들이 무너지는 이 때에 진정한 삶의 목적을 추구하려 했다. 예수의 산상수훈은 우리에게 힘이 차고도 넘치게 다가왔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직접 오셔서 말씀하는 것 같았다. 우리를 가로막는 계급과 지위의 장벽이 무너졌다.   “너희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여라” “누가 너더러 억지로 오 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 리를 같이 가 주어라” “네 속옷을 가지려는 사람에게는 겉옷까지도 내주어라"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축복하여라” “너희는 '예' 할 때에는 '예'라는 말만 하고, '아니오' 할 때에는 '아니오'라는 말만 하여라. 이보다 지나치는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다가 쌓아 두지 말아라” 산상수훈의 말들이 우리의 가슴을 쳤고, 우리 삶 전체를 뒤흔들었다. 우리는 얼마나 (이 진리로부터) 멀어졌던가? 어떻게 이것을 삶으로 실천할까? 누가 우리를 새로운 삶으로 이끌 것인가?

우리는 집에서부터 우리 삶을 살피기 시작했다. 우리 가정을 돌보는 집사와 가정부에게 가장 좋은 방들을 내 주었고, 에버하르트는 매일 출판사로 출근하기 전, 아침 일찍 일어나 집안 식구들의 구두를 닦기 시작했다. 이웃들은 우리의 새롭고도 이상한 삶의 양상에 대해 수군거렸다.  그들은 우리가 미친 것이 아닌지 의심했고, 가엽게 여기기 조차 했다. 종종 저녁에는 우리는 기타를 치며 한 방 가득히 모인 방문객들과 노래를 불렀고, 이후에는 이야기 꽃을 피웠다. 거기서 우리는 진정한 제자들의 완전한 딴 세상을 꿈꾸었다.

1919년 성령강림절, 말부르그 근처에서 결의에 찬 학생 수련회가 열렸다. 에버하르트는 기독학생회의 사무국장이며 간행지 Furche의 발행인으로 초빙되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는 것을 강하게 느꼈다. 예수께서 그 자리에 직접 임하신 것이 분명했다. 누군가는 그리스도가 에버하르트를 통해 말씀하셨으며, 참가자들은 완전히 새로운 삶에 대해 깊이 도전 받았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우리는 무엇인가 헤아릴 수 없는 존재 앞에 섰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셨고, 인간은 하나님의 것이 되었다.

튀링겐 탐바흐의 또 다른 수련회는 우리를 스위스 종교 사회주의자들과 연결시켜 주었다. 칼 바르트는 주 강사였고, 에버하르트는 부 강사였다. 이 수련회에서 칼 바르트는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과 완전히 다른 존재라고 했다. 그 분은 도저히 인간으로서는 접근할 수 없는 완전히 다른 신이라는 것이다. 우리 인간들은 작디작은 모래알과 비교할 수 있는데 너무나 자주 우리의 사소한 문제들을 갖고 아주 살갑게 일대일로 신께 나아간다. 그 분께서는 그 어떤 것으로도 묘사할 수 없는 위대한 하나님이신데 말이다. 영원하시며 초월적인 하나님 대한 칼 바르트의 증언은 큰 여파를 일으켰다.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우리의 연약함을 이전 보다 더 크게 깨달았다. 에버하르트의 강연은 초월자이신 그 분께서는 인간의 역사 속에 언제든지 내재하시며 관여하실 수 있음을 강조했다. 그 누구도 이 수련회에서 이 질문들에 영향 받지 않은 이들이 없었다. 영원, 즉 시대를 뛰어 넘는 초월적인 것이 이 시대를 바꿔야 한다는 스위스 종교 사회주의자들과 에버하르트의 증언은 우리 가운데 강하게 움직였다. 우리는 무엇인가 헤아릴 수 없는 존재 앞에 섰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셨고, 인간들은 하나님의 것이 되었다.

겨울이 왔고, 열린 저녁모임에서 우리는 주로 어떻게 우리 삶을 세울 것인 지를 토론했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는 우리를 인도하는 지표가 되었다. 프란시스코는 가난하게 떠돌면서 자연과 경이로운 관계를 맺었다. 태양을 노래했고, 새들에게 설교하며 청빈을 연인으로 삼았다. 톨스토이는 실패하기는 했어도 끊임없이 모든 것을 포기하려 했다. 도스토옙스키는 어떠한가? 사람들이 겪고 있는 결핍이야 말로 인류 전체가 지고 가야 할 책임이며, 우리 누구도 이 죄책감의 그물 안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고 했다. 우리 모두는 이 세상의 고통과 죄—전쟁에 대한 죄책감, 계급 투쟁, 인간 사이에 벌어지는 사회 불의에 대하여 통감했다. 어떻게 출구를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우리는 완전히 다른 삶을 시작할 수 있을까? 이 고민은 몇 주, 몇 달에 걸쳐 논의되었다. 우리는 결국 산상수훈과 예루살렘의 초대 교회(행 2-4)에서 그 답을 찾았다. 이렇게 우리는 초대 교인들과 같은 정신으로 함께 모여 살 정착지, 공동체를 시작하자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a youth conference on a hilltop in Germany
 성렴강림절 수련회 

슐뤼쉬턴에서 성령강림절 수련회를 준비하면서 우리는 관심 있는 친구와 동료들을 초대했다. 수많은 젊은이들과 함께 새벽 5시에 4등석 기차를 탔는데 간이역마다 행사 참가자들이 속속 타는 것이 아닌가? 그들의 간단한 옷차림과 둘러맨 기타로 알아챌 있었다. 200 명이 넘는 인원이 참가했는데 작은 읍내는 이전에 접해 보지 못한 손님들을 맞아야 했다. 많은 가정들이 환대했다. 젊은이들은 남녀로 구분된 헛간에서 머무르도록 했는데, 아침마다 우물 앞에서 단장을 하는 이들과 근처 시냇가에서 씻는 이들을 보는 것은 보기 드문 광경이었으리라.

식사는 아름다운 너도밤나무 숲에서 했고, 그러지 못할 경우에는 가까운 수도원을 이용하였다. 개를 받쳐 놓고 바람막이를 후에 불을 피워서는 냄비를 올려 놓고, 모닥불마다 3명에서 8명의 남녀들이 모였다. 스튜는 나뭇가지 껍질을 벗긴 막대기로 저었다. 이렇게 음식을 준비하는 자체가 수련회의 과정이었다. 보통 아침 식사 후에는 안으로 향했다. 거기서 우리는 먼저 내적으로 모이려 했다. 어떤 이가 성경구절을 읽으면 그것이 그날의 말씀이 되어 말씀이 어떻게 우리에게 임할지 기대하게 만들었다

무엇이 수련회를 그토록 의미 있게 만들었을까? 참다운 성령강림절을 경험하고 싶은 기대가 이렇게 아름다운 너도밤나무 , 자연 속에 녹아졌던 것이다. 기간 내내 무엇인가 일어날 거라는 설렘,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바라는 열망이 우리를 잡았다. 우리는 정말 거렁뱅이처럼 가난했고, 너무나 굶주렸으며 목이 말랐고, 완전히 빈털터리였다. 성령강림절에 임하신 성령께서 이런 우리에게도 흘러 넘치시길 기다렸던 것이다. 저녁 모임에서 우리는 불을 피웠고 서로 손을 잡아 원을 만들었다. “나는 세상에 불을 보내기 위해 왔다. 나는 불이 이미 지펴지길 얼마나 원했던가 우리는 불에 관련한 노래를 불렀다. 사람씩 앞으로 나가 자신의 마음을 밝혔다. “낡은 것들은 태워 사그라져야 합니다.” 마치 불사조 피닉스가 잿더미 가운데서 생명으로 태어나듯이 말입니다. 활활 타오는 불씨들과 불길들을 바라보며 우리는 첫사랑 같은 것을 경험했다. “말과 입술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위와 진실로 하라.” 이런 말씀을 원으로 하나가 가운데 우리는 헤어졌다. 무슨 말이 필요 했겠는가. 우리는 하나되었고, 의기로 충천했다.   

German  young people dancing

함께 춤을 추는 독일 청년들 

리듬감 있게, 심지어는 종교적이기까지 했던 원무圓舞 수련회의 정말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삶의 본질에 대해 어려운 토론을 마친 , 혹은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하나됨을 느꼈을 , 우리는 손을 잡았고 춤사위에 몸을 실었다. 종종 우리는 언덕 비탈에 앉아 루트와 기타를 치며 포크 송을 불렀다. 우리는 사랑 노래 자연에 관한 노래 개의치 않고 모든 노래를 성가를 부르듯이 깊이 있게 불렀다. 하나님, 그리스도에 대해서 언급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창조 세계 안에 우리 생애가 속했음을 확인했다. 우리 모두 영원의 시간이 도달했음을 느끼고 있었다.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영원 말이다. 그렇다.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껴안고 가신다는 것을 우리는 깊이 공감했다.

수련회 동안 우리는 자네츠 마을에서 큰집이 새로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가서 보았다. 겉으로 봐서는 우리의 상상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우리는 정말 단순한 농장 집을 원해던 것이다. 하지만 집은 깨끗했고, 단순하지만 멋진 방을 구비하고 있었다. 초장에는 건실한 과수나무들이 자라고, 울타리가 쳐진 채소밭과 평의 경작지가 갖추어져 있었다. 마리가 머물 있는 축사와 돼지 우리, 닭장과 마구간까지 전형적인 전원 생활의 풍경이 그리어 지지 않는가.


1920 6 21, 에버하르트와 에미는 건강이 약한 막내 딸과 명의 다른 자녀들과 함께 자네츠 저택으로 이사한다. 그들은 안정적인 수입과 집을 포기하고, 매우 단순하게 살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말이다. 에미의 말을 들어보자.


모든 것이 낙후했다. 그러나 또한 우리가 원했던 바가 아닌가? 우리는 중앙 난방과 온수가 제공된 이전의 커다란 집과 베를린의 중산층이 누리는 편리한 삶의 일상을 절대 그리워하지 않았다.

 물론 우리는 지난 몇 년 동안 쉴 새 없이 달려왔던 베를린의 삶에서 숨돌릴 틈이 필요했다. 그러나 첫날부터 이 곳은 방문객들로 틈이 없었다. 다리를 버젓이 드러내거나 웃통을 벗어 젖힌  청년들도 이 새로운 시도에  관심을 보이며 도우러 오기도 했다. 젊은 여성들도 왔는데 거의 매일 저녁이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부터 아가페와 에로스, 개인주의와 공동체에 대하여 끊임없이 토론을 벌이곤 했다. 손님들도 일터로 투입되었다. 주로 그들은 나무를 나르거나 패는 일을 했다.

우리를 전율케 했던 것은 다가올 왕국에 대한 기다림이었다. 사랑의 시대가 올 것이며 이제 고통도 죄도 죽음도 불의도 모두 극복될 것이라는 기대였다. 

우리 공동체의 내적인 시작은 가을에 이루어졌다. 가까운 몇 친구들과 집안 식구가 모여 사도 요한의 서신을 함께 읽었다. 에버하르트가 큰 소리로 읽었을 때, 사랑의 띠가 우리를 하나로 엮었음을 강하게 느꼈다. 그 때 참여했던 한 사람이 지금 이 시간이야말로 우리 삶의 토대가 놓여 진 것을 우리 모두 눈으로 확인했으므로 ‘성만찬’을 하자고 요청했다. 에버하르트는 잠시 흩어져 침묵 가운데 이 것을 생각해 보자고 제안했다. 그는 올바른 영이 각각 우리를 인도하셨음을 아는 길은 그리스도를 깊이 경험하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약 1시간 후에, 모든 이들이 원탁 주변에 모였다. 그것은 마치 사슬 하나 빠지지 않은 체인의 그림을 보는 듯 했다. 우리는 사랑과 기대감으로 충만한 성찬을 나누었다  

이런 경험을 통해 매일 1시간 온 식구가 모여 침묵의 시간을 갖자는 제안이 이루어졌다. 아침이던 자정이건 상관없이 말이다. 자네츠에 떨어져 사는 가까운 친구들도 같은 시간에 만나기로 했다. 우리는 ‘영원’에 귀 기울이며 하나님의 통치가 우리 가운데 역사하도록 기다렸다. 우리는 아침 6시마다 만나기로 했다. 모두 정확하게 침묵 모임에 왔는데 이 시간은 우리에게 하루를 지탱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누구와 사이가 벌어졌다거나 자기 안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누구도 이 시간을 놓치지 않았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완전한 침묵의 시간을 보냈다. 어떤 경우에는 노래가 제안되기도 했고 에버하르트가 신약이나 신앙의 다른 증인들의 글에서 중요한 부분을 읽기도 했다. 또한 모임 가운데 누군가가 자신의 심정을 자유로이 토로하기도 했다. 우리는 빛이 우리 가운데 불타오르는 것을 느꼈고, 이것이 우리를 따뜻하고 기쁘게 했다.

이렇게 우리는 뜨겨운 열정으로 첫 시작을 했다. 우리를 전율케 했던 것은 다가올 왕국에 대한 기다림이었다. 사랑의 시대가 올 것이며 이제 고통도 죄도 죽음도 불의도 모두 극복될 것이라는 기대였다. 우리는 이것이 먼 미래의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이 땅에서 일어날 실제적인 일이 될 수 있음을 느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미래를 간절히 우리의 삶으로 끌어 당길 때, 영원이 이 땅의 때가 될 것이라 느꼈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께서 주도하시는 분위기 가운데 하나가 되었고, 그 하나됨을 누구도 흩어낼 수 없다고 느꼈다. 이제 새로 싹트는 공동체로서 우리는 일치를 우리 삶의 목적으로 삼고 헌신하기로 다짐했다.  


에미 맨들의 설립자의 글 시리즈에서 에버하르트 아놀드의 글을 더 읽으세요. 댓글

About the author

Emmy Maendel

에미 맨들

에미 맨들은 주로 브루더호프 역사에 대해 글을 쓴다. 매달 보이스 블로그에 에버하르트 아놀드 글 중에 시기에 적절한 것을 뽑아 설립자의 글 시리즈에 올리고 있다. 지금 다벨 브루더호프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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