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따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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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머릿수건을 왜 쓰는 걸까, 그것도 좋아서 말이야’

2016-03-07

여성들이 종교적인 이유로 머리를 가리는 것에 대한 논쟁은 늘 뜨거웠다. 그러나 지난 몇 년 간 기독교와 이슬람 간의 종교 갈등이 커지면서 이 이슈는 이전 보다 더 극대화된 듯 하다. 머리를 가리도록 선택한 여성들은(대부분 정숙하기 위한 복장의 일부로), 그들이 옳다고 여긴 결정에 대해 격렬하게 논쟁하고 있다. 반면 정반대의 선택을 한 여성들은 종교적으로 반대 편에 처한 이들을 다방면으로 억눌리고, 세뇌 당했다고 보거나 패션 감각이 떨어진다고 여긴다. 여기에 대해 우리 영문 사이트 의 주요 블로거 중 하나인 노랜 볼의 글을 소개한다. 노랜은 자신이 옳고, 당신이 잘못되었다고 따지기 보다는 기독교 신앙을 가진 여성으로서 머릿수건을 자랑스럽게 쓰는 자신의 관점을 밝히고 있다. -편집자


나는 미국, 유럽, 호주의 도시와 시골 마을, 식당과 다우림(多雨林) 지대를 거치며 늘 주목의 대상이 되어 왔다. 머릿수건과 긴 치마를 입었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한 남자의 손을 잡고 다녔기 때문이리라.

남편과 두 아들이 노랜과  함께 산책하는 사진

남편과 나는 18년 간의 결혼 생활을 이루며 손 잡고 다니는 걸 즐겨왔다. 크리스의 손을 잡을 때면 우리가 서로 속해 있음을 기쁘게 드러내는 셈이다. 이런 면에서 우리의 복장을 통해 우리가 예수께 속해 있음을 명백하게 알리길 소망한다. 최소한 최신 패션 경향에 질질 끌려 다닌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는 않다.

나의 복장과 머릿수건을 통해 예수님을 증거할 수 있는 많은 기회가 주어졌다. 남들과 다르게 입은 결정에 따른 축복 중 하나라고나 할까.

물론, ‘보통’ 의복을 입는 많은 분들이 나보다 더 많은 이들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담대히 선포해 왔음은 분명하다. 내가 머릿수건을 두르고, 집에서 만든 옷을 입고 다닌다고 천국에 가는 황금 티켓을 얻은 양 재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마시라.

그럼, 나의 변을 밝혀 볼까? 머릿수건과 정숙함은 처음부터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이 꾸준하게 보여왔던 관심사였다. 그래서 나는 여성을 귀하게 여기셨던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왔던 사도 바울을 존경한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쓴 서신을 보자. “나 또한 바라기는 여성들도 소박하고 정숙하게 단정한 옷차림으로 몸을 꾸미기 바랍니다. 머리를 어지럽게 꾸미거나 금붙이나 진주나 값비싼 옷으로 치장하지 말고, 하나님을 공경하는 여자에게 어울리게, 착한 행실로 치장하기를 바랍니다. ” 그리고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를 보자. “그러나 여자가 머리에 무엇을 쓰지 않은 채로 기도하거나 예언하는 것은, 자기 머리를 부끄럽게 하는 것입니다.”

나는 전 세계에 걸친 기독 여성들이 이 구절에 대해 얼마나 신경을 곤두서는지 잘 알고 있다. 이렇게 작고 보잘것없는 블로그가 판을 뒤집을 만큼 무슨 영향력이 있을까. 그래도 이 말을 하고 싶다. 나는 단지 성경을 읽고 초대 교회사를 읽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이 성경 구절들에 감동하여 머리를 가려야겠다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 이것이 내가 왜 이렇게 입는지에 대한 그지없이 간단한 대답이다.

머리 수건을 쓰고 정숙하게 옷을 입음으로 나는 해방감을 느낀다.

나에게는 이것이 압박의 징조가 아니라 자유의 깃발을 휘날리는 것과도 같다.

이 자유는 내가 창조주와 바른 관계를 맺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고, 영원으로 이어지는 예배에 참여케 한다. (잠깐 곁길로 새자면: 나는 일터로 가는 20분간의 도보-기도 시간을 기대한다. 거대한 푸른 하늘이 둥글게 머리 위에 드려 있고, 금화조들이 길게 이어진 울타리에 주룩 앉아서 끊임없이 재잘거리는, 하나님이 손수 지으신 거룩한 집 안을 거니는 향유의 시간 말이다. 어떻게 이런 시간을 마련했냐고? 거울을 보는 시간을 훔친 거라 보면 된다. 나는 화장을 안 하기에, 무엇을 입고, 머리 모양은 어떻게 할까 시간을 쓰지 않기에 얻은 시간이다.

늘 남들을 흘깃거리며 비교하면서 자신을 바라보는 기쁨을 빼앗겨 본 적이 있는가. 최신 패션 풍조에 사로잡혀서 다른 여자들을 초라하게 만든 적은 없는가. 강도처럼 남과 자신을 바라보는 기쁨을 앗아가는 생각으로부터의 자유를 난 이야기하려 한다.

그리고, 가장 축복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이 자유를 경험한 나를 대하는 남성들과의 관계가 바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비로서 사람을 물건처럼 노예화 해왔던 관습으로부터 자유를 얻게 된 것이다. 나는 복장을 통해 나의 여성성을 가장 존중하는 태도를 견지함으로 다른 남성들도 진정한 남성으로서 행동하도록 격려하길 바란다.

성전은 그에 걸 맞는 가치를 표시하기 위해 외형을 장식하듯이 나의 옷도 거룩함의 표시이며 대화의 창이다. 나를 이 세상과 비껴 구별되게 한다.

머릿수건을 씀으로써 ‘나는 하나님께 헌신하고 있다’라고, 가시적인 세상과  보이지 않는 세상에도 입장표명을 하는 것이리라.

허나 이렇게 말함으로, 내 머릿수건이 나를 그 누구와 갈라놓거나 이 세상의 너무나도 많은 훌륭한 여성들과 남성들과의 충만한 우정 맺는 일을 방해하고 있지 않다는 걸 강조하고 싶다.

많은 친구들은 나의 옷차림이 너무 경건하거나 완벽주의에 사로잡혀 있다 라고 여기기보다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행위로 매일 입는다 라고 알고 있다. 그들은 이런 단순한 옷차림이 나에게 평화와 소속감을 준다는 걸 알기에  존중해준다.  

하나님과, 그리고 결혼한 여성으로서 멋진 한 남자에게 속했다는 소속감 말이다. 

나의 머리를 가림으로 나는 머리모양이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과 영혼과 인격이 중요하다라는 걸 말하려 한다. 내 몸을 가림으로, 나는 자기확신은 패션이나 몸매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있는 모습 그대로인 내가 참 귀하구나’라고 깊이 깨닫는 마음에서 오는 것이라 확신한다. 머리를 가리는 행위는 나 자신을 받아들일 뿐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여성 그대로인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정숙하게 옷을 입는 것은 나 자신을 깊이 존중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존중함을 일깨울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빤히 쳐다보는 대상이 되고, 심지어는 ‘당신 정말 아름답습니다’라거나 ‘당신 복장이 참 평화로워 보입니다’라는 감탄을 받곤 한다. 매번 나는 정말 수도 없이 왜 이렇게 옷을 입는지 질문을 받아 왔고, 이 기회를 통해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음이 그지 없이 좋다. 

그 중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의 하나를 소개해볼까?

“진짜 그렇게 입어야 해요?” 

“본인 스스로 결정한 거란 말이에요?’라는 사람들의 반응은,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의 여성들이 나처럼 단정한 ‘스타일’로  입기에 충분히 나올 법하다.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아니요. 그러지 않아도 돼요.” 나는 내가 원하기에 이렇게 입는다. 위에 쓴 이유로 말이다. 이러 함으로 나의 세 아들들은 예수님 대한 나의 사랑과, 남편에 대한 깊은 열정과 존경을 볼 것이다. 이거 이상으로 나의 인생을 충만케 할 것이 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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