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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터라이트의 지혜

2021-01-15

Anabaptists

예수님께서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14:33) 하신 것을 보며 고민했습니다. “하나님, 정말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하나요? 제가 어떻게 살아가기를 원하세요?” 질문의 답은 성경, 초대 교인들의 글들, 후터라이트의 글들에서 찾아볼 있었습니다.

주후 2세기에 살았던 그리스도인 헤르마스는 환상을 보았는데 환상의 내용은 저에게 진리를, 참교회됨이 무엇인지 보여주었습니다. 헤르마스는 거대한 탑이 물위에 지어지고있는 것을 보았는데 환상 속에서 만난 사람이 탑은 교회를 상징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탑의 가장 아래쪽에는 네모낳고 하얀 돌들이 사용되었고 돌들 사이에 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치밀하게 결합되어 있었지요. 하얀 돌들 위에는 깊은 곳에서부터 끌어올린 돌들이 올려졌고 하얀 돌들 사이에 금이 보이지 않았듯이 이번에도 돌들 사이에 금이 보이지 않아 마치 돌덩어리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헤르마스가 환상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묻자 환상 속에서 헤르마스와 함께있던 사람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얀 돌들은 사도들, 장로들, 집사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거룩한 삶을 살았고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들을 순수함과 경외심을 가지고 섬겼습니다. 그들 사이에는 평화가 있었고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갔기에 그들은 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하나가 되었지요. 하얀 돌들 위에 올려진 깊은 곳에서부터 끌어올린 돌들은 주님을 위해 고통 당한 사람들입니다.”

환상과 함께 진리를 보여준 것은 후터라이트의 글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그들이 환상 속에서 나온 깊은 곳에서부터 끌어올린 돌들이라는 확신이 생겼지요. 그들은 주님과 같이 정말로 어린양 같았습니다.

후터라이트는 종교개혁 당시에 시작된 아나뱁티스트 운동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유럽에서는 유아세례가 반드시 받아야만 하는 의식이었고, 가톨릭과 개신교 모두 유아세례를 반대하는 무리를 이단으로 취급하며 그들의 , 그리고 검으로써 처형하였습니다. 아나뱁티스트들은 유아세례가 성경에 근거해 있지 않다고 반박했고, 세례는 복음을 듣고 의미를 이해하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고자하는 이들에게만 주어져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아나뱁티스트들을 박해하는 사람들은 자주 이렇게 물었습니다. “마가복음 16장에 보면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을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자는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나오는데, 유아들이 세례를 받지 않으면 어떻게 구원을 얻을 있겠습니까?”

아나뱁티스트들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 말씀을 보십시요. 믿고 세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고 믿지 않는 자는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일백번 세례를 받는다고해도 믿지 않는다면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유아들은 믿을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말씀은 그들에게 적용될 없습니다. 사도 바울께서는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 하셨는데 말씀은 일할 없는 유아들에게 적용될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말씀은 일할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이었습니다. 당신이 누구기에 순수한 어린아이들을 심판하고자 하는 것입니까?”

순교를 후터라이트였던 클라우스 펠빙거는 다음과 같은 말을 1560년도에 랜드셧이라는 곳에서 재판을 받으며 하였습니다.

그들은 나에게 거룩한 교회를 버리고 어디에서도 반기지 않은 무리들과 함께하기로 하였는지 물었다…. 나는 그들에게 내가 거룩한 교회를 떠난 적이 없음과 반대로 오직 진정한 세례를 받음으로써 믿음의 공동체의 일부가 후에부터야 거룩한 교회의 신자가 되었음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교회 공동체에서 우리가 죄사함을 받을 있고 성령님께서 주신 매고 푸는 능력이 있음을, 그리고 그것이 천국과 땅에서 인정되는 것임을 설명하였다….

오순절 후에 초대교인들이 성령충만함을 받고 모든 소유를 공유하였듯이 후터라이트들로 성령충만함을 입어 모든 소유를 공유하는 공동체가 세워졌습니다. 후터라이트의 감독이었던 피터 발보트(1521-1578)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

세례의 신비로움은 우리에게 공동체, 공동의 삶을 가르칩니다. 사도 바울께서 말씀하셨듯이 우리는 세례를 받음으로써 몸이 되었습니다.(고전 11:13) 사도 바울이 이라고 것은 인체가 서로 조화함과 일치함이 무엇인지 가장 보여주기 때문입니다….건강한몸에게 인체의 모든 부분은 소중하나 역할이 같지는 않습니다.(고전 12:4) 손은 눈이 아니지만 몸에게 소중한 부분들이고 역할이 다릅니다. 눈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위해 보고 손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위해 일합니다. 그리고 모두 다른 부분들이 아프지 않도록 돕습니다. 만약 발이 미끄러진다면 다른 발이 서둘러 움직여 넘어지는 것을 막고자 하는 것처럼요. 부분이 아프면 전체가 함께 아파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모두 함께하는 것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영적인 몸의 일부로 우리는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영적인 선물들과 물질적이 재산을 모두 공유하며 살아가고자합니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하나된 몸이라고 자주 성경에 나옵니다.( 12:45, 고전 12:13, 1:23, 1:18)

헤르마스가 환상 속에서 보았던 , 교회를 상징하는 탑의 이야기로 돌아가보겠습니다. 헤르마스가 물었습니다. “ 탑이 위에 지어지고 있습니까?” 대답은왜냐하면 삶이 물로써 구원받았고 물로써 구원받을 것이 때문이다.”이었습니다. 이것은 세례를 상징하지요. 초대 교인들에게 세례는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믿음의 형제자매들과 함께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결심의 상징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세례의 의미가 약화되고 믿음과 세례가 분리되는 (유아세례)까지도 벌어졌지요. 후터라이트의 역사서에 보면오랬동안 억눌렸던 교회가 드디어 고개를 들었다….”라고 나오는데 그것은 종교개혁 때에 교회의 기초인 믿음의 세례, 고통당하신 예수님의 세례가 회복된 것을 의미합니다.

깊은 곳에서부터 끌어올린 돌들이 네모낳고 하얀돌들과 하나가 되어 돌덩어리처럼 보인 것처럼 초대 교인들과 후터라이트들은 같은 믿음과 소명을 가지고 살아갔습니다. 성령충만함으로 그들은 하나가 되었고 그들의 하나 됨 안에서 폭발적인 선교가 이루어졌는데 사람들은 그들의 말보다도 그들의 삶을 보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듬어 그분의 탑에 사용하기를!


김희태 님은 뉴욕주 체스터군의 벨베일 공동체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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