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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의 대가

2017-10-20

루터파 교단은 이번 달에 오백 주년 창립기념일을  축하한다. 마틴 루터가 로마 가톨릭교의 유구한 전통에 질문을 던졌을 때, 그는 과연 자신의 생각이 전 유럽의 기독교 국가들을 완전히 뒤집을 거라고 예측했을까?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완전히 새로운 것이 태어났다. 1581년 후터파의 연대기를 보자. “하나님께서  샛별을 보이셨다. 이 진리의 빛은 이 세상의 시간에 찬란한 빛을 비추었다. 친히 그의 말씀을 독일 전역에 특별히 비추사, 신성한 진리의 기초를 내어 보이시므로 그분의 거룩한 사역을 모든 이에게  알리셨다.”

나는 최근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 북부 알프스 지방의 티롤에 다녀왔다.아나뱁티즘의 시작에 대해 더 알기 위해서였다. 특별히 후터파 교회가  활발히 일어난 당시에 야곱 후터와 아내인 카타리나에 대한 연구 기대가 컸다.

Tirol landscape

알프스의 티롤 풍경 

아나뱁티스트 운동은 1525년에 일어났다. 루터의 역사적인 논쟁에서 더 진보한 남녀들의 모임이었다. 그들은 유아세례가 사실 진정한 세례가 아니라고 믿었다. 교회는 예루살렘의 초대교회들처럼 “회개하고 세례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이어야 한다고 확신했다. 그들은 어떠한 폭력에 참여하는 것, 심지어는 자기 방어나 전쟁에 참여하라는 왕의 명령에 대해서도 거부했다. 그들은 자신의 소유를  하나로 모아서 공동체로 모여 살기 시작했다. 신자들의 세례는 이들을 나타내는 상징이 되었고, 곧 중대한 범죄행위로 규정되었다.

아나뱁티스트들은 루터의 역사적인 논쟁에서 더 진보한 남녀들의 모임이었다.

몇 군데 티롤의 문서보관소를 찾아 다니며 1500년 대의 기록들을 숙독했다. 그러면서 이 신자들이 갇히고, 고문 받고, 때로는 처형당했던 중세의 성들을 돌아봤다. 나는 마치 그 먼 시간 너머에 서 있는 듯 했다. 다양한 지역의 관리들의 이름을 익히고, 당시 교회의 감독과 인스브루크 연방 정부가 주고 받은 서신들을 읽었다.  취조 당시의 문서들을 보면서 나는 초대 교회의 카타콤이 순간적으로 연상되었다. 발렌타인이라는 사람의 목록에서 예를 들어 보자: 

3년 전에 야곱 후터와  장롱을 만드는 사람이 그의 집에 와서 음식을 요청했다. 후터는 발렌타인에게 이것 저것을 물으면서 혹시 거룩한 진리에 대해 알고 싶은지 물었다. 그는 그렇다라고 대답하면서 그럴 사람이 있다면 하고 전제를 붙였다. 그들은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는  들판으로 나아갔다. 후터는 세례의 의미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설명했다. 그리고 발렌타인은 무릎을 꿇었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죄를 용서하시도록 기도했다. 후터는 그에게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믿는지 물었고, 그는 예하고 대답했다. 후터가  “하나님께서 당신의 죄를 사하셨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런 후, 물을 들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그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모임은 깊은 골짜기나 인적이 동떨어진 산기슭에서 이루어졌다. 백 명 이상의 남녀가 모였다고 전해진다. 정해진 청지기들은 그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했는데 오십 덩어리에 이르는 빵이나 수소를 잡고 구워서 먹이곤 했다. 서로를 격려하고, 소식을 나누고, 세례식과 성만찬을 치르는 축제의 장이 되었던 것이다.

반면, 당시의 권력 세력은 “현혹하는 이단 세력”의 뿌리를 뽑아내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그들은 모임 등에 스며들어 면밀히 감시할 이들을 보냈다.

1535년 10월, 쉐네크의 한 관리는 야곱 후터와 젊은 아내, 카타리나가 그 지역에 온 것을 감지한다. 여기서 상관에게 보낸 그의 보고서를 소개한다:

야곱 후터는 그의 아내와 함께 있었다. 그녀는 임신상태였고, 별일없는 한 곧 출산할 듯 싶다. 그녀는 해산할 곳을 찾아 두 마을을 전전했다. 이 불쌍한 어린 여자가 출산할 곳을 찾는다면 아마 후터도 잡을 수 있을 테니, 관리들을 풀어 수색해야 할 것이다.

그 달 중순 경, 카타리나는 아기를 낳았을 것이다. 6주 후에 한 번 더 여행 준비를 서둘렀는데, 아마도 갓 태어난 아기를 친지에게 맡겨둔 것으로 추정된다. 그녀와 야곱은 11월 30일 밤에 잡혔다.

branzoll landscape

브란졸 풍경, 야곱과 카타리나가 잡혀있던 브란졸 성

야곱 후터는 인스부르크에 인도되어 고문과 취조를 당하다가 1536년 2월 25일에 끝내 산채로 화형 당하고 만다. 한편, 카타리나는 티롤 남부 지방 감옥에 구속되어 있다가 몇 달 뒤에 탈출을 감행했고, 2년 후에 다시 잡혀서 참수를 당했다고 전해진다.

알프스의 티롤 지방은 그림 같은 집들과 낭만적인 성들로 정말 숨이 막히도록 아름답다. 그런데  한 무리가 그들의 믿음 때문에 피의 순교자가 되어 이 곳에서 너무나 무고한 피를 흘렸다. 나에게 이런 용기와 세례에 대한 확신 있는가? 이 확신이 만약 내가 사랑하는 것을 모두 저버려야 하고, 숨어서 살다가 참혹한 죽음을 맞는다라는 걸 의미한다고 해도 말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이 곳, 영국에서는  차마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여전히 세계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정확히 이런 박해를 받고 있다.

이번 달은 많은 이들이 마틴 루터를 되새기고 있다. 더불어 영적으로 새로 거듭난다는 것은 대가를 지불해야 얻을 수 있다는 것임을 또한 새겨 보자. 다른 이들이 기꺼이 자신의 전부를 걸고 값을 치러 왔듯이 말이다. 우리의 믿음이 오늘 날에도 확고하게 설 수 있도록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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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my Maendel

에미 맨들

에미 맨들은 주로 브루더호프 역사에 대해 글을 쓴다. 매달 보이스 블로그에 에버하르트 아놀드 글 중에 시기에 적절한 것을 뽑아 설립자의 글 시리즈에 올리고 있다. 지금 다벨 브루더호프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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