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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새 출발을 원한다면 아이들과 시간을 더 보내세요!

2019-01-24

나는 이 커다란 학교에서 교생실습을 하는 것이 너무 즐겁다. 내가 다니는 웨스트버지니아 대학의 5년 교사교육 프로그램을 통해서 유치원 연령에서 5학년까지 팔백 명에 이르는 학생을 가르치는 이 큰 학교에 오게 됐다. 백인이 다수를 차지하는 주에 세워진 이 학교는 다양성을 자랑한다. 우리 반의 24명 유치원 아이들만 보더라도 중국 아이 3, 필리핀 멕시코 아이 각 1, 상하이, 덴마크, 노르웨이, 프랑스에서 살다 아이들과 중동에서 3명까지 9개국이 모인 셈이다. 아이들이 자체 활동을 때면 중국어나 아랍어로 떠드는 소리로 북적거린다. 내게 영어를 배우는 아이들이 자신의 모국어로 모처럼 친구들과 떠들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우리는 학년 초기에 서로가 얼마나 닮았고, 다른 지 마주이야기를 나눴다. 머리색깔이 엷은 사람, 진한 사람, 눈동자 색깔이 파란 사람, 갈색인 사람, 키가 큰 사람, 작은 사람이 누구인지 얘기를 나누다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누구 피부색깔이 어둡고, 옅은 지로 흘러가게 되었다. 어떤 고정관념도 엿볼 수 없는 너무나 5살다운 아이들의 비교였다.

이런 점들이 바로 유치원에서 보낼 일주일을 아주 기대하게 한다. 그동안 3시간이 넘는 대학의 수업시간들과 3 동안 같이 고도의 긴장감으로 치를 떨던 스물 넘는 동급생들 속에서 벗어나 인생을 천진무구하게 바라보는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은 나에게 마치 신선한 휴식처럼 느껴졌다.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것은 뭔가 특별하다. 교사라는 직업이 볼일 없이 여겨지고, 저임금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 일은 산더미 같지만 해볼 만한 일이다라는 것이 같은 학과생들과 교수들, 교육현장에서 일하는 이들이 일반적으로 동의하는 거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아름답게 표현했다. “사람의 영혼은 아이들과 함께 하므로 치유됩니다.”

two boys cutting paper

그러나 우리가 함께 경험하는 단순하지만 깊은 경험들-왕나비가 번데기를 깨고 나오는 장면을 보면서 성장에 대한 순진무구한 대화가 터지고, 아이들의 눈물이 포옹 하나로 금방 사라지는 같은- 너머 우리 아이들은 많은 겪고 있다.

놀이터에 서서 노는 아이들을 지켜 보면서 달이 지나는 동안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라면 보지 못할 아이들의 진면목을 알게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인공 꼭대기에 오른 곱슬머리 여자아이는 지금 자기 엄마가 암으로 죽어가는 병원을 바라보고 있다: 작은 빨간 머리 아이를 넘어뜨리며 막대기를 총인 들이민 남자아이는 엄마가 만성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녀석은 집에 가는 것이 무섭다고 말했다: 검정 머리를 반짝이며 큼직한 외투를 입고 있는 남자아이는 엄마가 일년에 4,5개월을 중국으로 일하러 간다. 그때마다 며칠을 울곤 한다.

지금 우리 세상이 아이들을 안전하게 키울 수 있는 곳은 아니지만 유치원 교실에서만이라도 우리는 아이들이 돌봄과 포용과 차이점을 존중하고, 자기 행동을 책임지는 가치를 세우고 있다.

아이들이 내가 맡은 학생들이다. 아침마다 너무 반가워하며반혼 선생님, 셜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치 우리가 자기를 못봐서 한주간 몸살이라도 것처럼 외치는 아이가 바로 엄마가 죽음을 앞둔 여자애다. 엄마가 떠날까 불안해 하는 녀석은 기회만 있으면 눈웃음을 지으며셜키 선생님, 도와 주세용!” 한다.

5 아이라면 몰랐으면 싶은 일들을 겪고 있는 아이들은 어느새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나 행복해 하며 미래를 향해 웃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일하는 나는 운이 좋다.

그러나 아이들이 학교 시간을 벗어나 겪을 일을 생각하면 무섭기까지 하다. 지금 우리 세상이 아이들을 안전하게 키울 있는 곳은 아니지만 유치원 교실에서만이라도 우리는 아이들이 돌봄과 포용과 차이점을 존중하고, 자기 행동을 책임지는 가치를 세우고 있다. 우리 교사들은 날마다 중국어 아랍어 영어로 하이파이브나 주먹인사, 악수 어쩔 때는 그냥 미소로안녕!’ 인사하며 날마다 아이들을 교실로 맞는다.

아이들은 매일 아침 교실로 걸어 들어오며 하루를 맞이할 준비, 하루를 기대할 준비로 들떠 있다. 동료들과 달리 아이들은 자신들이 겪은 좌절과 불만을 교실 안으로 질질 끌고 들어오지 않는다. 아이들은 앞으로 일어날, 혹은 일어나지 않을 문제들로 걱정하지 않는다. 눈물과 심통이나 실망이 닥치더라도 아이들은 여기에 정면으로 맞서서 고치려 든다. 그리고 뒤에는 모든 것을 잊어 버린다. 이래서 아이들은 여전히 웃을 있다. 이래서 왕나비나 센티미터의 눈도 즐길 있다. 아이들의 삶이 완전함과는 거리가 아주 먼데도 말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주일에 이틀 보내는 유치원에서의 경험을 인생에 확대시켜야 한다는 것을. 나는 이것이 우리들 삶에서도 진실이라 말할 있기를 바란다. 뉴스를 통해 우리가 직면하는 모든 것들과 우리 각자의 생과 우리 가슴 속을 보면 당신과 내가 치유가 필요하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치유는아이들과 함께 일어난다.


아네타 셜키는 모르간타운에 살면서 웨스트 버지니아 대학에서 초등교육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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