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방식이 궁금하신가요? 주저하지 마시고 연락해 주세요. 아래에 다루어진 질문과 대답을 통해 여러분의 궁금함을 풀어 드립니다. (여기에서 대부분 다루어진 주제들은 ‘우리의 신앙과 소명’ –우리가 공유한 공동체 삶의 교리와 질서를 공식적으로 표명한 정관- 내에 더욱 심도 있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우리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려 모든 것을 기꺼이 버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진정으로 환영합니다. 예수께서 “너희의 그물을 내려놓으라”고 명하셨습니다. 제자됨의 길은 이런 예수님의 부르심에 우리도 동일하게 응답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브루더호프에서의 멤버쉽은 종신 서원으로 맺어집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멤버가 되고자 한다면, 여러분뿐 아니라 우리들에게도 하나님께서 이 특정한 삶의 방식으로 당신을 부르셨는지 명백히 확인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브루더호프의 멤버가 되어야만 그리스도인이 된다거나 구원을 얻는다고 믿지 않기에 멤버를 삼으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우리의 멤버 중에는 박사자격을 지닌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일상 생활에서조차 도움이 필요한 이들도 있습니다. 어떤 이는 불우한 가정 환경에서 자라났고, 나름 사회적 지위를 가졌었거나 유복한 가정 환경에서 자라났던 사람도 있습니다. 멤버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만21세 이상이 되어야 하며, 성인으로서 개인의 믿음을 선포한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브루더호프의 멤버가 되는 길’에 대한 더 자세한 사항은 여기를 방문하길 바랍니다.
아닙니다. 브루더호프의 멤버는 상속권처럼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어디에서 태어났느냐 와는 상관없이 멤버가 되려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께서 이 곳으로 부르셨음을 경험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비롯 브루더호프에서 자라났다 하더라도 각기 다른 인생의 길을 선택합니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 각자가 삶의 목적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섬기며 봉사하는 삶을 바라도록 키우려 합니다. 아마도 우리 젊은이들은 우리와는 다른 부르심을 가지고 살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제 3세계 가난한 자들을 섬기거나 도시 내에서의 선교활동이 그러한 예입니다.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은 우리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초석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우리는 종교인입니다. 반면, 개인의 경건성을 극대화하려 한다거나 지나치게 종교적으로 자신을 치장하려 하는 것을 삼가 한다는 면에서 보자면, 우리는 종교적인 사람들은 아닙니다. 우리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며 다른 기독교 분파들에 비해 오히려 우리의 믿음에 대해서 적게 말하는 편입니다.
브루더호프 공동체에서 살려면 여러분은 예수님을 따라 살기를 원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려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예수를 따라 살기를 원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길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공동체로 삽니다. 서로 모이기를 사랑할 뿐더러 예수님을 따르길 원하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두 세 사람이 그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우리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공동체라는 삶으로 부르신 직접적인 이유입니다. 여러분이 함께 공동체로 살지 않는다면 초대 교회와 같이 모든 것을 공동의 것으로 삼고 함께 나누는 생활을 하기란 어려울 것입니다. (행 2:42–47)
우리가 공동체로 사는 이유는 이 길이 예수님을 따르는 데 있어서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일단 공동체로 살다 보면 왜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살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공동체로 살면, 사람들이 일상 생활에서 처리해야 하는 문제들 –각종 청구서 처리 , 끼니 해결, 아이들을 위해 좋은 학교 찾기, 건강 관리 문제와 외로움-이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공동체를 통해 인류가 바라는 이상적인 사회의 전형이 제시되기를 바랍니다. : 어린 아이 하나부터 노인 한 분까지 사랑으로 보살펴지고, 가난과 소외됨이 없고, 성실한 결혼 생활이 지켜지고, 폭력이 설 수 없는 사회, 대의를 위해서 사람들이 자신의 소유를 기꺼이 포기하는 곳이 되길 바랍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무한하고 광대한 분이십니다. 여기 사는 우리 각 개인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살라고 부르심을 받았기에 살아 가지만, 이 길만이 예수님을 따르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소명은 예수님을 향한 것이지 공동체가 아닙니다. 예수께서 모든 사람들을 그 분께로 이끄시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이 복음은 두 가지의 새 계명으로 요약됩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온 정성과 영혼과 마음과 힘을 다해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여러분이 이 계명을 지킬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았다면 저희에게도 알려 주십시오. 우리도 여러분과 함께 그 길을 가길 원합니다.
급진적이란 의미는 각기 다른 사람에게 다르게 여겨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급진적이라 함은 우리의 믿음을 삶으로 헌신하는 것이며, 삶의 현장에서 예수의 말씀을 철저히 따르는 것이 우선시 되어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오늘 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사유재산과 개인의 부유를 추구하는 일에서 아무 잘못을 느끼지 못합니다. 오직 몇몇 교회만이 공동소유를 실천하고 서로에게 평생을 헌신하며 모든 결정을 일치 가운데 내리고 있습니다. 더 드물게는 날마다 용서와 정직을 실천하고 열린 마음으로 사랑의 충고를 주고 받는 이들을 찾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이런 식으로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의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급진적이었습니다. 우리도 그들처럼 살기를 원합니다.
공동소유를 쉽게 표현하자면 한 돈주머니 안에서 함께 벌고 쓰는 것입니다. 우리 공동체 멤버 중의 그 누구도 개인의 명의로 된 재산이 없으며 급료나 대가나 용돈도 받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공동 멤버쉽에 속해 있습니다.누군가 멤버가 되는 경우, 그들의 소득과 유산은 교회에 헌납되고 각 자는 의식주의 혜택을 받게 됩니다. 각 개인은 우리가 사용하는 돈의 출처를 교회 공동체에 보고합니다. 우리 브루더호프 멤버들은 가난한 자도, 더 부유한 자도 없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우리로부터 나온 것이 아닙니다. 초대 교회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음, 그렇습니다. 모든 이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들이 다 다릅니다. 우리의 재능뿐 아니라 단점들이 모두 다르듯이 말입니다. 브루더호프는 보통 사람들을 적당하게 섞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늘 헝클어진 듯한 사람과 모든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이, 쾌활함을 타고 난 듯한 사람과 어딘지 늘 먹구름이 낀 듯한 사람, 늘 새처럼 재잘거리는 이들과 입술에 풀이라도 붙인 듯한 사람, 혈기가 차고 넘치는 사람과 고요와 침착으로 중무장한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를 쓰는 사람들, 하루에 5 마일을 줄기차게 달리는 사람들, 늘 무언가를 만드는 공예가, 조류 관찰에 목숨 건 사람부터 새로운 맥주 맛을 창출하기 위해 고민하는 사람도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술가, 의사, 음악가, 기술자, 웹 디자이너 등 다양한 이들이 있답니다. 어떤 손님 중에는 우리의 복장이나 행동, 말하는 내용이 비슷해서 ‘에이, 다들 똑같군’ 하고 지레짐작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사귀어 보십시오. ‘어, 보기하곤 다른데’하고 놀랄 것입니다. 우리 각 개인은 공동체 생활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신 ‘진정한 자신’이 되는 기회를 발견해 왔습니다. 패션 풍조나 사회의 전형적인 규범의 압력에서 자유로운 진정한 자신 말입니다.
정숙하고 점잖게 입으려고 하니 이렇게 유별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사회적 지위, 부를 드러내거나 너무 눈에 틔고, 성적으로 자극하는 옷은 피하려고 합니다. 예수께서 마음과 영혼과 몸을 순결케 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정신이 우리 복장 가운데 드러나도록 애씁니다.
이러한 단순한 복장 방식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굳건히 하려고 합니다. 이런 걱정에서 자유로워지면 옷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또한 하나님이 창조하신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존중하길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 여성들은 치마와 머릿수건을 착용합니다. 우리 남성들은 여성들처럼 눈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단순하게 입으려 합니다.(브루더호프 여성이 쓰는 머릿수건에 대한 개인의 성찰이 담긴 블로그를 참조 하세요.)
우리의 한 멤버(카르멘 힝키는 우리 블로거 중의 하나입니다)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독특한 라이프 스타일은 독특한 복장을 창출한다고 봅니다. 길거리를 걷거나 공항을 거니는 걸 즐기는 편인데요. 많은 사람들이 바로 제 옷을 보면서 제 삶이 무언가 다르다고 보더군요.”
우리가 가톨릭 교회에 속해 있지 않다는 점에서 개신교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나뱁티스트 전통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 말은 우리와 주류 교파 사이에 동일함을 찾기 어렵다는 겁니다. 우리를 초 교파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공동체에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종교적 배경을 가지고 합류했기에 때문인데, 교파를 초월했다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에게만 어떠한 특별한 계시가 임한다고 믿지 않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성서에 근거합니다. 우리는 사도신경과 니케아 신조에 명시된 기독교 신앙의 모든 가르침을 고백합니다.
요한 사도는 그의 복음서에서 교회는 창조 때부터 세워졌다고 했습니다.(요 1:1) 우리는 이 거룩한 교회에 속하길 원하며 모든 신실한 신도들과 함께 이 교회를 나누길 원합니다. 예수께서는 인간이 만들법한 기관을 세우러 오시지 않았고, 우리의 이웃을 우리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을 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16세기 종교개혁 시기로 거슬러 가면 성서에 온전히 근거하여 교회 개혁을 결의한 아나뱁티스트들이 있었습니다. 아나뱁티스트들은 세례를 받기 위해서는 개인의 믿음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보기에 유아세례를 거부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오직 믿음뿐만이 아니라 전 생애를 건 제자도가 병행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아나뱁티스트는 교회는 하나님의 영원한 일이기에 어떤 국가-지원 기관이랑 동일시될 수 없다고 여깁니다.
한시적인 권위로부터 분리를 취하는 태도의 결과로 아나뱁티스트는 국가 공무원이나 경찰직, 군대와 관련된 일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미쉬와 후터라이트(메노나이트와 브레드런도 같은 분파라 볼 수 있습니다.) 같은 아나뱁티스트 유산을 갖고 있습니다. 복장으로 볼 때 비슷한 면이 있기도 합니다. 공식적으로 이 어떤 그룹과도 교류관계를 맺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는 이 분들의 삶을 아주 존중합니다.
아미쉬와는 달리 우리는 공동체로 모든 것을 나누며 살고, 테크놀로지를 이용합니다. 오늘 날의 많은 후터라이트와는 달리 우리는 예수님의 마지막 지상명령(막 16:15)을 강력하게 믿고 있으며, 1500년 대 초대 후터라이트처럼 새로운 사람들을 환영해야 된다고 믿습니다.
아닙니다. 브루더호프의 그 누구도 일에 대한 대가(봉급, 수당, 연금, 용돈)를 받지 않습니다. 누구도 사유재산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이렇게 사는 걸 우리는 좋아합니다!) 도시에 사는 멤버들은 직업을 갖고 있지만 봉급은 교회 공동체로 기부됩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필요한 이들에게 쓰여지고 교회 공동체는 우리 각자가 필요한 의식주를 제공합니다. 만약 누군가가 돈이 필요하다면, 예를 들어 외출을 해야 하는 경우 돈을 받아서 필요한 만큼 쓰고 공동체에 보고합니다.
이렇게 함으로 우리는 늘 한 토대 위에 함께 서 있는 셈이 됩니다. 그 누구의 일도 더 낫게 여겨서 기득권을 취하거나 업신여김을 받는 일은 없습니다. 공동체 내 세탁소에서 일하는 일도 전문 기술자나 의사의 일과 똑같이 가치 있는 일이라 여깁니다.
네!
네. 우리의 많은 젊은이들이 종합대학교의 교육이나 그와 상응한 수준의 직업훈련과정을 이수하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자원봉사의 기회나 일터에서 관련 기술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습니다.
네. 우리는 지역교회들과 노숙자 쉼터들, 무료 급식소, 양로원, 사회복지회와 연결해서 우리 주위에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물질적인 도움뿐 아니라 어려운 일을 겪고 있는 이웃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멤버들이 정기적으로 지역 구치소나 교도소를 방문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YMCA나 청소년 클럽과 지역 미술, 음악제 현장에서 자원봉사를 하거나 모금활동을 돕기도 합니다.
그럼요. 날마다 찾을 수 있답니다. 물론 각 개인이나 나이별로 재미있는 일에 대한 기대나 생각이 다르겠지만 많은 이들이 모여 살기에 재미있는 일들, 즉흥적인 축구경기나 과열경쟁으로 치 닺는 포커 카드게임 등이 끝도 없이 발생합니다.
부활절이나 성탄절, 성령 강림절 같은 교회절기야말로 연중 특별한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 절기에 종교 의식을 치르는 것과 더불어 우리는 축제답게 만찬을 준비하고 각 종 모임으로 축하합니다. 가능하다면 이 모든 행사에 어린아이들이 참여토록 합니다.
우리는 축하하는 걸 너무 좋아해서 생일,결혼 뿐 아니라 어머니의 날에서부터 옥토버페스트(독일의 추수축제)의 바비큐 파티, 피냐타(미국 내 스페인어 권 사회에서 아이들이 파티 때 눈을 가리고 막대기로 쳐서 넘어뜨리는, 장난감과 사탕이 가득 든 통) 깨뜨리기를 합니다. 심지어는 이상한 후테나니(미국 내 민속 음악 연주 모임,파티)도 한답니다. 한국인 멤버들이 합류하면서 구정, 추석(강강수월래까지!) 등을 소개하며 연중 행사가 풍성하게 되었습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모든 이들에게 건강한 음식을 제공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섭취하는 동물에 대한 생명 존중함을 가지고 지구 환경을 생각하며 우리 농장에서 육류와 야채를 생산합니다. 몇 손가락 안에에 꼽히는 멤버들 중에는 육류를 삼가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우리 대다수의 멤버들이 동의한, 브루더호프 창립자인 에버하르트 아놀드의 채식주의에 대한 시각을 읽어 보세요 (미번역)
우리 중의 많은 사람들이 위에 언급된 특별한 날에 주류를 즐깁니다. 물론 적당하게 마십니다.
우리 여성들은 엄마, 양육자,주부로서의 역할을 사랑합니다. 교사, 의사, 판매원, 변호사, 세탁부로서의 역할 또한 사랑합니다. 몇 몇 운이 좋은 여성들은 건축현장에서 일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남성과 여성들 사이에 일어나는 동반자적 관계와 협동 정신을 소중하게 여기며 존중합니다. 결혼 생활이나 단순한 직장 동료 관계에서와 같이 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런 태도야말로 서로를 최상으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독신자 와 결혼한 이들의 역할에 대해 더욱 알기를 원하신다면 ‘우리의 믿음과 소명’ 77-82항을 읽어 보세요.
우리 공동체들은 멤버로 구성된 의료 전문가들(의사, 의료 보조사, 간호사,물리치료사,치과 의사)의 섬김을 받고 있습니다. 전문적인 상담과 치료가 요구되는 경우 지역 병원을 이용합니다.
만약 누군가 장기적으로 장애나 병을 앓고 있는 경우, 공동체는 최선을 다해 보살피려 합니다. 이런 경우 1층에 위치한 주거지를 마련하고, 병원 식 침대 또는 전일 간병인을 보조합니다. 나이든 노부부나 홀로 사는 분은 한 두 명의 젊은이들과 함께 작은 가족을 이루도록 격려합니다. 왜냐하면 이 젊은이들은 전문 의료인은 아니어도 가족을 이루고 살면서 우정과 도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서로를 돌보는 일은 특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얻는 이득은 양방향으로 흐릅니다. 나이든 노부부와 가족을 이루며 사는 젊은이들은 자연스레 어울리며 익힌 유머와 참을성과 겸손의 가치를 여러분들과 나누려 할 것입니다.
마지막 생애를 앞둔 이들을 돌보는 일은, 물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인 요구가 상당합니다. 우리 공동체는 이렇게 인생을 종료하는 분 곁에 모이려 합니다. 아이들은 밝고, 환한 그림을 전하러 오거나 노래를 부릅니다. 주 안에서 하나된 형제들과 자매들이 작별인사를 고하기 위해 하던 일을 멈추고 방문합니다. 때로는 온 공동체가 임종을 앞 둔 분의 창가 앞에 모여 믿음과 용기를 북돋는 찬양과 기도를 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