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따르기

초대교회의 소유 없는 삶이 실패했다고?

2018-07-31

여러분은 성경이 진리라고 믿습니까?” 신학교 1학년 학생들에게 묻는다.

학생들이 !”라고 대답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말씀에 따라 믿음을 실천합니까?”

 !” 학생들은 손을 들어올리며 동의를 표한다. 나는 즉각 사도행전 2장과 4장을 읽기 시작한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에 몰두하며, 서로 사귀는 일과 빵을 떼는 일과 기도에 힘썼다. 모든 사람에게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사도들을 통하여 놀라운 일과 표징이 많이 일어났던 것이다.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그들은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날마다 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집집이 돌아가면서 빵을 떼며, 순전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서 호감을 샀다. 주님께서는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셨다.

많은 신도가 마음과 뜻이 되어서,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다. 사도들은 능력으로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사람들은 모두 은혜를 받았다. 그들 가운데는 가난한 사람이 사람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을 팔아서,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앞에 놓았고, 사도들은 사람에게 필요에 따라 나누어주었다. 키프로스 태생으로, 레위 사람이요, 사도들에게서 바나바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의 별명을 받은 요셉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밭을 팔아서,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앞에 놓았다.’

-사도행전 2:42-27; 4:32-24(새번역)  

 성경책을 덮, 질문 하나를 던졌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렇게 살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그건 당시에나 한번 일어났던 일이었으니까요.” 학생이 열심히 말한다.

 그때는 예외였어요. 성령께서 처음으로 교회에 임하신 때였으니까요.” 다른 학생이 거든다.

다른 학생!  “누가가 기록에서만 있는 초대교인들의 삶입니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것처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해서는 안되겠죠.”

누군가 끼어든다. “초대교인들의 열정이 사그라들면서 나중에 대가를 치렀습니다. 모든 것을 공동으로 나누는 것이 정말 중요했다면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셨겠지요.”   

나는 잠시 듣고 있다가 질문을 던진다. “사도들의 가르침을 따르십니까?”

 “, 그럼요!” 모두 수긍한다.

 여러분은 기도에 전념하십니까?” “성만찬에 참여하십니까?” “함께 모여 하나님을 찬양하십니까?” 모두들 내가 묻는 말이 중요하다고 동의한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모든 것을 나누지 않습니까?” 침묵이 흐른다.

loaves of bread in baskets

정말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초대 교인들처럼 공동으로 소유하지 않는가? 우리는 예수님이 모든 소유로부터 자유케할 있는 힘을 주셨는데 개인 소유에 연연할까?

누가는 사도행전에서 예루살렘 교회가 경험한 충만한 성령체험을 숨김없이 분명히 기록했다. 교회는 대담하게 공동체적이었다. 재산을 사유화하지 않았다.

초대교인들은 실제 어떻게 공동체적으로 살았을까? 모두 개인 소유를 팔아서 공동으로 돈주머니를 만들어 나누며 살았을까? 교회는 공동체적으로 반드시 살아야 하는 걸까? 어떤 기준으로? 자원해서? 예외도 있었을까? 초대 교인들의 삶을 보면 가지가 두드러져 보인다. 첫째, 그들은 서로에게 헌신했다. 둘째, 그들은 모든 것을 나누었다. 셋째, 그들 중에는 궁핍한 자들이 없었다.

서로에 대한 헌신: 사도행전 부분을 보면 대부분의 제자들은 로마제국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순례하러 이들임을 있다. 오순절과 같은 유대 명절을 맞아 찾아온 이들은 환대하는 사람들의 손길에 의지할 밖에 없었다. 이들은 천명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무언가 땅을 뒤흔드는 일이 일어났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던 이들이 성령 체험을 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이들은 새롭게 맺은 공동체에 헌신하게 된다. 원문에 쓰인 헬라프로스카르테레오(proskartereo) 꾸준히 관심을 쏟는다라는 뜻이다. 이 순례자들은 순례를 무한정 연장하기로 결정했을 뿐만 아니라 서로 진심을 다해 헌신했다.날마다 모이기에 힘썼고”( 2:46), “모든 신자들이 마음과 뜻이 되었다”( 4:32).

이 교제는 단순한 우정이나 동지 의식이 아니었다. 실용적이고 물질적인 방식으로 서로 나누고 돌보는 구체적인 현실 사회였다. 신자들은 모여 살며 교제했다. 서로에 대한 헌신은 가볍지도 일시적이지 않았다. 지역을 벗어난 개종자들( 2:14)도 적극 헌신했다. 이 신자들의 가정이 영구적으로 환대의 처소로 바뀌는 경우를 보더라도 그들의 헌신은 아주 온전했다.

공동소유: 누가는 모든 신자들이 함께 모여 모든 것을 공유했음을 강조했다 ( 2:44). 아리스토텔레스와 키케로 이상적인 공동체를 자신의 재산을 친구의 처분에 두는 것이라 했다. 쿰란 지역이나 에세네파 일부 유대인 그룹은 피타고라스 모델을 따라 모든 소유물을 공동체로 환원했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사회로부터 물러나 하나님의 미래를 기다리는 새로운 종말론적 공동체가 되었다. 그러나 초대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물러난 것이 아니라 고대 그리스의 이상적인 진정한 우정뿐 아니라 언약 공동체에 대한 신명기적 비전을 성취했던 것이다 : " 것이 당신 것입니다."

초대교인들 중에 자신의 재산을 자기 것이라 간주한 사람은 없었다. 소유물은 공동체 전체의 처분에 맡겨졌다. ‘사도들의 이란 말은( 4:37, 5:2, 참조 11:30) 실제로 공식적인 소유물의 양도가 일어났다고 시사한다. 나눔은 자발적이었어도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영과 권위에 복종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공유는 법적 거래는 아니었으나 여전히 실질적인 행위었다. 초대교인들은 " 마음과 지녔기에 소유욕이 없어졌다.

흥미롭게도 누가의 요약에는 매우 뚜렷한 불완전 시제 동사가 사용되었다. 이것은 습관적이고 반복적인 행동을 나타낸다. 다른 필요가 생겨나면서 자선 활동이 생겨났다. 예루살렘에서 없이는 음식을 얻을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부동산이나 다른 자산을 사용하지 않은 채로 청산하고 돈을 공동 기금에 기부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 알고 있는 기금도 지원 수단이 부족한 과부들(그리고 아마도 다른 사람들 :, 딤전 5:16)에게 사용되었다. 기도와 빵을 떼는 것과 같은 나눔은 가끔 발생하는 것이 아닌 매일의 경험이었다.

따라서 자신의 밭을 팔아 교회에 드린 바나바의 예는( 4:36-37) 하나의 모델이다. 그렇다! 그는 법적으로는 땅의 소유자이지만 자기 것이라 하지 않았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예는( 5 ) 바나바와 정확한 대조를 이룬다. 그들의 죄는 여호수아 7 장에서 언급된 아간과 비교될 있다. 아간에게 쓰인 감춘”( 노스피조nosphizo)이라는 단어가 아나니아와 삽비라에게도 동일하게 쓰였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공동체의 재산을 횡령했다. 그들은 수익금을 교회에 주는 체하며 땅을 팔았으나 이제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감추었던 것이다. 그들의 문제는 거짓말을 해서가 아니라 "주님의 영을 시험했다" 있다.

베드로는 아나니아에게 자기 재산을 포기해야 기독 공동체에 들어올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누가는 " 누구도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4:32) "땅이나 집을 소유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그것을 팔았다."(4:34) "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2:44) 기록했다. 예수께서도 군중들에게 "너희 가운데서 누구라도, 자기 소유를 버리지 않으면, 제자가 없다"( 14:33)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아나니아의 죄는 그가 재산 포기 선언을 통해 기독교인척한 있었다. 때문에 그의 죄가 그토록 심각하게 다루어졌던 것이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이 쓰여진 목표는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모든 것을 포기하도록 이끄는데 있다.

빈곤 퇴치: 사도행전 4:32에는 "그들 중에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없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초대교회는 성령으로 탄생했고, 급진적인 나눔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을 모두 채웠다고 알려졌다. 아무도 곤궁에 빠진 이가 없었다. 교회는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도록 하라"(신명기 15:4) 하신 말씀을 분명하고, 심각하게 여겼다. 누가는 그들 모두에게 은혜가 임했다고 지적했다. 왜냐하면 그들 중에는 가난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초대교회의 경제적 삶은 자신들의 필요가 충족되었다는 사실보다는 누군가의 필요가 충족되었음을 보여준다 ( 4:35, 37; 6:1; 20:33-35, 24:17, 2:10 ). 누가가 기록한 것은 예수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는 사람들이 배나 보상받을 거라는 예수님의 약속( 10:29-31) 성취를 보여준 것이다. 급진적인 포기와 하나님께 대한 완전한 의존(예를 들어 5:11, 14:33, 18:22) 모든 것을 나누게 한다. 모두가 함께 포기할 , 모두가 함께 누릴 있는 것이리라.

누가의 초대교회 생활에 대한 기록은 사람들이 복음을 회개로 응답할 그리스도의 영이 지상에서 어떻게 일하시는 지를 묘사한다. 성령님은 이들의 삶을 충만케 하셨으니 소유물을 포함한 어떤 것도 서로에게 사랑을 보여주는 장애물이 되지 못했다. 그들은 주님께 속했기에 모든 것을 버렸다! 간단한 질문을 던져본다. 우리는 이렇게 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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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e author

Charles E. Moore

찰스 무어

챨스 E 무어는 아내, 딸과 함께 뉴욕주 에소푸스에서 살고 있다. 마운트 아카데미에서 성경과 기독교 사상을 가르친다. 덴버 신학교에서 윤리와 철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1982-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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