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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 우리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2020-04-16

Jesus raises Lazarus from the dead
카를 블로흐, 나사로의 부활, 1870

부활절이 의미하는 바는 단순한 죽음과 부활을 너머 섭니다. 예수님은 사망을 농락하셨을 뿐만 아니라 다시 생명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살아계십니다!

예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

우리는 말씀을 믿습니까? 질문은 오늘 특히 우리의 마음을 찌릅니다. 우리는 죽음과 고통, 두려움의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은 삶과 의식의 모든 면에 침투했습니다. 수많은 사상자가 생길 거고, 많은 사람들이 공포와 슬픔 그리고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죽어갈 것입니다. 그곳에 부활이 올까요?

요한복음 11장에 있는 죽은 나사로의 이야기를 면밀히 살펴본다면, 이러한 질문에 대한 줄기 빛을 발견할 있습니다.

예수께서 지극히 사랑하셨던 마리와와 마르다의 형제 나사로가 앓고 죽어간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병이다. 이것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영광을 받게 것이다.

병과 죽음이라는 재난이 궁극적으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라는 말씀은 놀라운 생각입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이야기를 끝까지 따라가보겠습니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의 의미와 다시 유대 지방으로 돌아가자는 예수님의 말씀이 안전할 것인가에 대한 이러저러한 논의가 있었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나사로는 죽었다. 내가 거기에 있지 않은 것이 너희를 위해서 도리어 일이므로, 기쁘게 생각한다. 일로 말미암아 너희가 믿게 것이다. 그에게로 가자."

예수님이 도착했을 사람들은 슬픔으로 혼란 가운데 있었습니다. 나사로는 이미 죽었으며, 무언가 손을 쓰기에는 너무 늦었습니다.

“주님, 마르다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이 여기에 계셨더라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라도, 나는 주님께서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실 압니다." 예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셨다. " 오라버니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마르다가 예수께 말하였다. "마지막 부활 때에 그가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은 내가 압니다."

바로 순간에 예수께서 능력 있는 기쁜 소식을 선포하십니다.

예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

“예, 주님! 마르다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은 세상에 오실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내가 믿습니다."

여기서 마르다의 믿음은 비록 칭찬 받지만, 이는 모두 주님이시며 구세주이신 분과 함께 슬퍼하고 눈물 흘린 다음에야 일어났습니다. 자매들은 예수님을 나사로가 묻힌 무덤가로 안내했습니다. 여기서 많은 눈물과 흐느낌이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눈물을 흘리셨다.

Jesus raises Lazarus from the dead 헨리 오사와 테너, 나사로의 부활, 1896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이제 나사로를 죽음으로부터 살리실 분이며, 죽음을 극복하실 것을 아시는 분도 친구의 죽음이 비통하여 우셨습니다. 이것은 보여주기가 아니고 진정한 애도의 눈물이었습니다. 고통 역시 치유와 부활의 부분입니다. 고통과 죽음 그리고 슬픔 없이 부활이 있을 없습니다. 고통을 통과하는 것이 회개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망과 슬픔이 생명으로 바뀔 있을까요? 복음서의 말씀이 이를 가장 설명해줍니다.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하게 여기시면서 무덤으로 가셨다. 무덤은 동굴인데, 어귀는 돌로 막아 놓았다. 예수께서 "돌을 옮겨 놓아라" 하시니, 죽은 사람의 누이 마르다가 말하였다.

"주님, 죽은 지가 나흘이나 되어서, 벌써 냄새가 납니다."

예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리라고, 내가 네게 말하지 않았느냐?"

사람들이 돌을 옮겨 놓았다. 예수께서 하늘을 우러러 보시고 말씀하셨다. "아버지, 말을 들어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아버지께서는 언제나 말을 들어주신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해서입니다. 그들로 하여금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에,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너라" 하고 외치시니, 죽었던 사람이 나왔다. 손발은 천으로 감겨 있고, 얼굴은 수건으로 싸매여 있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그를 풀어 주어서, 가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이야기로부터 우리가 죽음과 부활에 대해 무엇을 배울 있을까요? 나사로의 죽음을 오늘날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한 죽음과 비교할 없습니다. 사상자가 즉각적으로 다시 부활할 것이라 희망하는 또한 무리입니다. 그러한 기적을 희망하는 자체가 잘못이 아닙니다. 여전히 기적은 일어나고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기도에 귀기울이십니다. 우리는 각자의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자비와 치유를 베푸시길 구체적으로 기도함과 동시에 세상의 고통을 끝내시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떠한 경우에서라도 죽은 이들이 지금 여기서 당장에 부활하지 않더라도 결국에는 승리의 삶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분명 죽음은 있을 겁니다. 그리고 우리 가운데 죽어야만 하는 이기심과 허영, 그리고 무의미한 우상숭배들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와 문화 가운데서 사라져야 것들도 있습니다. 마약 중독, 폭력, 성매매, 인종차별, 민족주의, 정치적 분열주의, 환경에 대한 불경, 욕심과 물질주의, 전쟁, 기근과 재난, 가난과 희망 없음, 정신질환과 절망 등입니다. 우리가 최후의 원수인 사망을 무찌를 수만 있다면...

그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있으며, 예수님께서 하실 있습니다.

Covid 19 first responder사진: Martin Sanchez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부활과 회복이 가능해졌습니다.

희망이 부활하고 이웃을 서로 돕는 상부상조가 살아날 있습니다. 자가 격리와 검역이 끝나면 공동체도 다시 살아날 있습니다. 교회도 새로워지고, 참된 형제자매들이 빵을 떼는 진정한 교제가 이루어지며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힘을 얻게 것입니다. 연대와 사랑이 군대와 봉쇄보다 월등하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을 통해 모든 민족과 문화, 종교마저도 새로워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음과 부활을 통해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실 것이므로 부활절 기간에 기도합시다.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에게 하셨던 것처럼, 무덤을 막고 있던 돌을 옮기시고 감싸고 있던 ‘우리의’ 베옷을 풀러 헤치시고 ‘우리를’ 살려내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살아나셨습니다! 우리도 살아날 것입니다.


하인리쉬 아놀드는 아버지이자 할아버지입니다. 또한 목회자요, 교사음악가이기도 합니다. 뉴욕 리프톤의 우드크레스트 브루더호프에 삽니다. 트위터로 팔로우하세요. Twitter: @JHeinrichArno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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