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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 움트는 희망

2019-05-27

런던, 춥고도 축축한 아침의 도시. 우리 하우스 공동체 앞 거리는 차들이 빵빵대고, 주차된 차들 사이에 끼여 어쩔 줄 모르는 버스를 향해 한 운전자가 삿대질을 한다. 행인들은 얼굴이 잔뜩 굳은 얼굴로, 거리의 소음을 헤드폰으로 막는다. 빈 웃음 가스 통이 도로를 나뒹굴고, 어젯밤에 누군가가 토해 놓은 과도한 화학물질이 찌꺼기가 되어 불쌍하게 놓여 있다. 나는 비명을 질러대는 광고판과 경찰차의 사이렌에 마음을 다잡고 외투로 꽁꽁 싸맨 후, 볼 일을 보러 나선다. 그런데 갑자기 무언가 내 마음의 안개를 뚫고 들어온다. 다 쓰러져 가는 정원의 울타리 뒤에서 들려오는 새의 노래 소리이다.

flower blooming in an urban environment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스팔트 포장 사이로 초록색 싹이 움트고, 공터에도 가녀린 꽃들이 피어나고 있다는 이제야 알아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거칠게 보이는 남자가 이어폰을 빼고 아기 유모차를 가지고 낑낑대는 젊은 엄마를 허리를 굽혀 돕고 그 여인은 불안했던 얼굴을 거두고 감사의 미소를 띄운다. 그리고 털보 아빠가 길에 고인 웅덩이를 깡충 뛰어 넘는 딸과 기쁨의 순간을 나누는 사이로 한줄기 햇빛이 비춘다.

나는 여기에 있는 걸까? 아내와 나는 런던의 하우스 공동체로 파송을 받고 그 도전에 들떠 있었다. 그러나 전원 생활의 평화와 아름다움을 늘 사랑했던 사람들로서 두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이 도시는 아주 시끄럽고, 팍팍하고, 안절부절 못하는 듯이 보였다. 나는 이곳에서 학창시절을 오래 전에 보냈었다. 그때에도 나는 될 수 있는 한 빨리 시골로 향하는 기차 속에 몸을 싣고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지금 나는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내가 목격한 작은 친절함과 자비로운 행동들을 신선한 공기처럼 들이마신다.  

우리 공동체 건물 앞에 개조된 차고 위로 희망과 영감의 책들이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 창밖을 보니 호기심 많은 낯선 사람들이 평화주의자 예수왜 용서해야 하는가를 훑어보고 있다. 이후 초인종이 울리더니 한 젊은이가 절망과 중독에 시달리는 자신의 힘겨운 싸움을 차 한잔 마시며 나누길 원한다며 들어선다. 대화를 나누고 돌아가는 그의 모습에서 그나마 계속 살아 보겠노라는 용기가 엿보인다.

Note

며칠 전에 기부함에 누군가 이런 쪽지를 남겼다.

(이런 곳을 알게 되다니 어두운 날이 정말 밝아진 것 같습니다. 여윳돈이 있다면 여러분이 하시는 일을 돕고 싶은데, 제게 그런 여유가 없네요. 그러나 여러분 같은 사람들이 있어서 저도 사랑과 평화로 부유해집니다. 제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 줘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너그로움이 이런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아시길 바라며…)

저녁식사 시간, 여기에 사는 대학생들이 강사들의 부도덕한 가르침 강요, 외설문화의 압력, 패션, 테크놀로지, 경력, 성공에 대한 부담 등을 토로한다. 브렉시트 같은 정치적 이슈나 불확실한 경제, 고독, 폭력, 노숙, 낙태를 가지고 토론을 벌인다. 또한 성서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용감하게 맞서는 사람들과 친분을 맺게 된 이야기도 듣고, 그저 운동장에 나가서 함께 게임을 하며 기분 좋게 놀기도 한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우리는 그날 있었던 긴장을 활기찬 공놀이로 풀고 우수개소리를 하면서 벽난로 앞에 앉아 미래를 꿈꾼다

Members of Peckham House, an intentional Christian community in London, UK

펙컴 하우스 공동체 사진

우리 주변에는 정치적으로, 도덕적으로, 경제적으로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 일이 깔려 있다. 이것은 우리 전체 사회에 적용되는 것만큼 개인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도시에서 이런 세력에 압도당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희망의 사람으로 부르심을 받았다. 나는 이를 사도 바울이 고린도서에서 말한 출산과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피조물이 이제까지 함께 신음하며, 함께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8:22 새번역)

산모들을 많이 돌봐온 의사로서 출산이 시작될 때, 아무 성과도 없이 고통에 극심 시달리는 것을 보아 알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탄생의 기쁨이 있을 거라는 걸 기대하는 사람들은 이 희망으로 온갖 고통속에서도 끝까지 이기려 한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과 서로에게 모든 상황에도 희망을 갖도록 격려해야 하며 우리가 왜 여기에 있는지 기억해야 한다. 용기를 북돋는 것, 궁극적으로는 인류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희망을 전해야 한다. 우리는 희망을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 우리를 신뢰하고, 이 깨진 세상에서 분투하며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위한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금 서 있는 이 은혜의 자리에 믿음으로 나아오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될 소망을 품고 자랑을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을 자랑합니다. 우리가 알기로, 환난은 인내력을 낳고, 인내력은 단련된 인격을 낳고, 단련된 인격은 희망을 낳는 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통하여 그의 사랑을 우리 마음 속에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5:2-5 새번역) 춥고 비까지 오는 이런 날에도 삶이 힘겨운 날에도 희망은 뚫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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